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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포르투갈, 스페인] 내 생애 첫 야간열차, Renfe Trenhotel (렌페 트랜호텔)

이틀간의 포르투갈 일정을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동하는 밤이다.

솔직히 포르투갈의 수많은 매력을 느끼기에 이틀 일정은 너무나 짧았고 근교도시인 포르투도 가보지 못한게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스페인의 화려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빨리 이동하는 수밖에.

처음 일정을 만들때 우린 리스본에서 마드리드로 갈것인지 아니면 세비야로 바로 이동할 것인지를 두고 엄청 고민을 했었다. 마드리드에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으나 하루를 머물기엔 다른도시 일정이 안나오고, 세비야로 바로 가자니 꽃할배에 나왔듯 야간버스를 타야하는데 그건 절대못하겠고.. 비행기를 타야하나 야간열차를 타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차,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렌페 트랜호텔이 당분간 공사로 운행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라나다-바셀을 비행기로, 리스본-마드리드를 야간열차로,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아침일찍 본 후 세비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일정이 확정되자 모두가 애증하는 렌페 사이트에서 의외로 일사천리(!)로 예약에 성공했다. 난생 처음 타는 야간열차라 기대반 걱정반 이었는데, 지금 아니면 더 나이들면 못탈것 같았기에, 그리고 2인실에 샤워실, 화장실도 붙어있는 객실로 예약했기에 걱정을 접어두기로 했다.

▶ 렌페 예약 사이트 http://www.renfe.com/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트랜호텔을 타는 날.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동 루트상 처음 예약했던 역보다 전 역인 Santa Apolonia에 와서 기차를 탔다. 이곳이 출발역이라 기차가 정차하고 있어 여유롭게 탑승이 가능했다.
(아침에 미리 호텔 프론트에서 물어보고 미리 이 역 코인라커에 짐을 보관해뒀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객실. 2인실이라 작은 침대가 이층으로 되어있다. 헉 그런데.. 샤워실과 화장실이 없는거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반드시 포함된 열차로 해야한다고 잘 알아보고 예약한건데..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일단 화장실을 체크하러 다녀와본다. 이 복도 끝에 남녀공용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이 화장실의 치명적 문제점은 변기덮개가 고장났는지 덮개가 고정되지 않는다는것. 앉아있으면 두꺼운 합판?으로된 덮개가 등을 때린다. 한손으로 잡고 있을수도 없고 기차는 덜컹거리고 변기뚜껑은 자꾸 등을 치고 그야말로 난리였다. 게다가 밤에 인적드문 화장실에 와야한다는 점에 멘붕이 더해졌고..

혹시나 옆칸 화장실은 괜찮을까 싶어 옆 객차로 건너가봤더니, 이럴수가! 그곳이 바로 내가 예약하려던 그 샤워실이랑 화장실 딸린 객실이 바로 옆칸이었다. 따라서 그 객차에 공용화장실은 없었고.. 결국은 그 치명적 결함이 있는 화장실을 쓸 수 밖에..

 

어쨌거나 첫 야간열차의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는구나 싶어 멘붕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는 그나마 안락하다. 담요가 생각보다 약간 얇긴한데 덮고 자기에는 불편하진 않았다.


그리고 방에있는 작은 세면대. 손잡이를 꾹 누르면 일정량의 물이 나오고 멈추는 구조라 씻기에 이렇게 불편할 수 없다.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야..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렇게 작은 세면대에서 고양이세수를 하고 우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기차의 덜컹거림에 자다깨서 창밖을 확인하길 수차례. 겨우겨우 조각잠을 자다가 기차가 멈춘 느낌에 깼는데 어느 역에 기차가 한참 서있었고, 아마도 이미 스페인에 넘어온듯 외교부 안전문자가 몇개 와있었다.


그날 밤은 유독길었던것 같다. 어찌나 기차가 흔들거렸는지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본 핸드폰 만보계(?)는 오류로 2만보가 찍혀있었다.


아침이되어 내릴시간이 다가오자 차장아저씨가 와서 문을 힘차게 두드린다. 문을 열어주자 침대정리를 해준단다. 그리고 순식간에 침대에서 의자로 변신.


내리기전 막간을 틈타 아침으로 사과를 하나씩 먹었다. 이래저래 준비를 하다보니 결국 시간이 모자라서 열차 안 카페에는 가보지 못했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

예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의도치않은 경험까지 하게되었는데, 결국은 이것도 추억이 되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왜 우리가 예약한 객실엔 샤워실과 화장실이 없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도 나름의 추억을 만들게 된 야간열차. 잊지 못할 것 같다. 더 나이들어도 또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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